복면시대를 산다~^*^ -임언기 신부님
2015.06.15 임언기 안드레아 신부님 묵상글
요새 TV를 틀면 왜 그렇게 복면(覆面; mask; veil)을 쓴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철에 메르스 전염병으로 온 나라가 준(準) 전시체제가 되어
더워 죽겠는데, 병원에서 의료진들은 방역복을 입고 도심의 시민들은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복면달호는 실패로 끝난 영화라고 하지만, 복면가왕, 복면검사 등등
왜 요새 사람들에게 그런 프로가 인기가 있을까?
도시와 단체, 나라의 질서와 재산의 보호를 위해 너무나 많은 CCTV에
노출된 사람들이 자신의 프라이버시(privacy; 사생활)가 지켜지길 바라는
심리가 거기에 담겨져 있어 대리 보상을 느끼는 걸까?
사실 복면을 하고 목소리가 변조되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래서 그에게 씌어진 고정화된 굴레와 꼬리표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어떤 한 부분에 의해 판단되는 그의 정체성을 뛰어 넘어서, 감추어진
끼와 카리스마, 능력과 가능성이 드러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왜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판하며,
수많은 세월이 지나 그가 변화되고 달라졌으며 성숙했는데도,
왜 고정된 관념과 선입견으로 봤는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복음의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 그토록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왜 하셨는지도 생각하게 되고, 아무리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만, 성령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 가라지도 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망각해 온 것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노출된 시대에 몸담고 살면서 조금은 가려지고
숨겨진 부분들이 있을 때, 사람과 삶에 대한 신비스러움도 부활하게 된다.
아니 우리가 판단하는 '사람' 자체가 얼마나 신비스럽고 다양한 성품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인간 자신도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실제 좋은 멘토와 인생의 스승을 적재적소에 만났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반전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양극은 함께 만난다', '양극은 함께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각 나라 마다 어둠의 세력들, 즉 검은 돈과 마약과 폭력으로 무장하여
성(性)을 상품화하여 돈을 벌고, 쾌락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세력들을 향해
개방된 집단들이 여러 이권에 관여하여 사업을 해서 쉽게 돈을 벌고
세력을 확장하면서, 소위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 검찰의 비호를 받으며
권력 상층부와 조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구조악과 부조리 때문에 법이 제 구실을 못하고,
정의 대신에 불의가 자행될 때, 항상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등장하는 메시야같은 인물이 요청되는데,
그것이 바로 복면을 쓴 캐릭터이다.
그런 피지배층과 서민들과 민중들의 울분과 열망이 배트맨, 왕거미,
복면검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통상 사람의 위격(位格)을 '인격'(人格)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정의(定義)하자면 지성과 자유 의지가 있는 실존(実存)으로서
자기 행위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행위의 주체'
(主體; subject)를 말한다.
'위격'이 영어로는 'personality'인데, 이것은 희랍어의 '페르소나'
(persona)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원래 '가면'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연극이나 오페라 같은데서 자신이 맡은 역할과 배역을 잘 하기 위해
쓰는 '가면'(假面)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그의 역할을 잘하게 하는 것',
'그로 하여금 그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실 이런 개념을 갖고 사람의 인격을 논할 때에,
그가 인격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그의 안과 밖이 같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사언행위(思言行位)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는 그런 자신의 진실하고 진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그 사람의 색깔과
개성과 인품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지금 이 시대, 겉으로 드러난 껍데기 정보의 홍수와 CCTV로
너무나 많은 것이 노출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복면과 가면의 문화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참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사실 인간들끼리 선입견과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함부로 엉터리로 판단하고 비판하고 단죄한다.
그러나 겉이 아니라 속을 보시는 하느님, 숨은 것도 다 아시고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까지도 다 예지하시는 하느님
(시편139,1~24) 앞에 인정 받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성경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안목으로 이웃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외모 지상주의와 눈에 드러나는 가시적인 폼생품사와 메스컴에
속아 넘어가면 결코 안된다.
이 사회와 권력과 돈의 메카니즘은 도덕적 양심의 부재와 실종으로
말미암아 멀쩡한 한 사람을 완전히 바보와 희생양으로 만들 수 있고,
졸지에 속에 아무 것도 든 게 없는 사람을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기 스타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가짜', '짜가'는 오래가지 못하고, 그 당사자도 자신의
겉과 속이 다름에 허탈해 하며, 양두구육(羊頭狗肉)과 위선(僞善)의
인생 여정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비천한 이의 지혜는 그의 머리를 들어 높이고
그를 높은 사람들 가운데에 앉힌다.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 사람을 칭찬하지 말고
겉모습을 보고 그를 혐오하지 마라.
꿀벌은 날짐승 가운데 작지만 그가 만든 것은 단것 중에 으뜸이다.
좋은 옷을 입었다고 뽐내지 말고 영광을 받을 때 자신을 높이지 마라.
주님의 위업은 놀랍고 그분의 위업은 사람들 눈에 감추어져 있다.
수많은 군주들이 땅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고 생각지도 않은 이가 왕관을 썼다.
수많은 권력가들이 심한 모욕을 당하였고 영화로운 지위에 있던 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졌다."
(집회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