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107. 회당장 클레오파의 집에서

Skyblue fiat 2022. 4. 28. 02:08

 

요한과 그의 형이 어떤 작은 마을의 한 집 문을 두드린다. 나는 그 집이 엠마오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와 함께 들어갔던 집인 것을 알아본다. 문이 열리자 그들은 네게는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과 말을 한다. 그런 다음 나와서, 거리를 지나 좀 떨어진 곳에 다른 제자들과 같이 멈춰 서 계신 예수께로 간다.


“선생님, 그 사람이 집에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 선생님이 오신 것을 기뻐합니다. 그 사람은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서 선생님께 내 집을 마음대로 쓰시라고 말씀드리시오. 지금 나도 가겠소.’ 하고요.”


“그러면 가자.”


일행은 얼마 동안 걸어가다가 “고운 내”에서 이미 본 일이 있는 늙은 회당장 클레오파를 만난다. 예수와 회당장은 서로 몸을 숙여 인사를 한다. 그러나 족장(族長)과 같은 그 착한 노인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인사한다. 그를 본 읍내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가까이 온다.


노인은 일어나서 말한다. “여기 언약되신 메시아가 오셨습니다. 엠마오의 주민들, 이 날을 기억하시오.”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인간적인 호기심으로 쳐다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벌써 종교적인 존경을 보인다. 두 남자가 군중을 헤치며 와서 말한다. “선생님께 평화. 저희들은 그날 거기 있었습니다.”


“당신들에게와 모든 이에게 평화. 나는 여러분의 회당장께서 부탁하신 대로 왔습니다.”


“여기서도 기적을 행하시겠습니까?”


“만일 믿고 또 기적이 필요한 하느님의 아들들이 있으면, 물론 기적을 행하겠습니다.”


회당장이 말한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회당으로 오시오. 또 병자를 둔 사람들도. 선생님,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됩니까?”


“그렇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오정이 지난 뒤에는 여러분을 상대하겠습니다. 지금은 착한 클레오파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군중이 호위하듯 따라오는 가운데 노인 곁에서 그의 집에까지 계속 가신다.


“선생님, 제 아들과 제 아내, 제 며느리와 손자들입니다. 제 다른 아들이 장인 클레오파와 같이 이곳의 불쌍한 사람 하나와 예루살렘에 가 있는 것이 몹시 섭섭합니다. … 그러나 그 애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님, 제자들과 같이 들어오십시오.”


일행은 들어가서 이 지방 풍습에 따라 음식물로 원기를 회복한다. 그런 다음 날씨가 축축하고 춥기 때문에 넓은 벽난로에서 타고 있는 불 가까이로 간다.


“조금 있다가 식사를 하십시오. 저는 이곳 유력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오늘은 큰 명절입니다. 그 사람 모두가 선생님을 믿지는 않습니다만, 적대적인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찾고 있는 중입니다. … 그들도 믿고 싶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요 근래에 메시아 문제로 아주 많이 속았습니다. 성전에서 한마디만 하면 경계심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에서는 … 저는 이렇게 소박하게 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들으면 이 방향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 참된 친구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그 중 한 분이십니다.”
“저는 한 보잘 것 없는 늙은입니다. 만일 제가 더 젊었더라면 선생님을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몸이 무겁습니다.”


“선생은 믿는 것으로 벌써 나를 돕고 계십니다. 선생은 선생의 믿음으로 나를 전하고 계십니다. 클레오파 선생, 안심하세요. 구속의 때에 선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몬이 헤르마와 같이 오십니다. 곧 도착하시게 됩니다.” 하고 회당장의 아들이 알린다.
위풍당당한 모습을 한 꽤 나이많은 두 남자가 들어오는 동안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생님, 이 사람은 시몬이고, 저 사람은 헤르마입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만 마음 속이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분들에게 당신을 드러내보이실 것입니다. 그 동안 평화가 이분들 위에 내려오기 바랍니다. 평화가 없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엘리야에 대해서도 열왕기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선생님들의 제자들입니까?” 하고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묻는다.
“그렇습니다.”
“나이도 서로 다르고 출신지방도 가지가지로군요. 그럼 선생님은 갈릴래아분이십니까?”
“나자렛 사람입니다. 그러나 호구조사를 하던 시기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베들레헴 출신이시로군요. 선생님의 얼굴 모습이 그것을 확증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약함에 대한 친절한 확증입니다. 그러나 확증은 초인간적인 차원의 것입니다.”
“선생님의 행적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헤르마가 말한다.
“행적에 대해서도 그렇고, 성령께서 내 입술에서 나오게 하시는 말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 말은 직접 들은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지혜는 대단히 큽니다. 선생님의 나라를 세우실 생각입니까?”
“왕은 그의 나라의 벌률을 아는 신민(臣民)들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법률들은 전혀 영적인 것인걸요!”
“헤르마 선생,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영적인 나라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영적인 법전(法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재건은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인간적인 의미로 생각하는 흔히 있는 오류에 빠지지 마세요. 이스라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백성의 참 자유와 참 능력을 재건할 터인데, 구속되어서 영원한 진리를 차지하는 영혼들을 하늘나라에서 돌려주는 것으로 그것을 재건하겠습니다.”


“식탁에 앉으십시다.” 클레오파가 예수와 같이 가운데에 자리를 잡으며 말한다. 예수의 오른편에는 헤르마가 있고, 클레오파 옆에는 시몬이 있다. 그리고 회당장의 아들이 있고, 다른 자리들에는 제자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주인의 청을 들어 봉헌과 축복을 하신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된다.
“선생님은 이 지방에 오십니까?” 하고 헤르마가 묻는다.
“아닙니다, 갈릴래아로 갑니다. 여기는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뭐라구요? 선생님이 ‘고운 내’를 떠나십니까?”
“그렇습니다. 클레오파 선생.”
“겨울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그들을 실망시키십니까?”
“내가 그런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이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뭐라구요? 왜요? 선생님이 무슨 나쁜 짓을 하셨습니까? 팔레스티나에는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말을 하는 선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것이 선생님께는 허락되지 않습니까?”

“클레오파 선생, 알려고 하지 마시오. 선생은 연로하시고 지혜로우십니다. 그러니 이 쓰라린 앎의 독약을 마음 속에 넣지 마십시오.”


“그러나 선생님이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야 물론 잘못된 평가로 그런 것이지만, 아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것을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 모양이로군요? 우리가 선생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런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 그렇지요. 시몬?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모두 다 알고 있지 못한지도 모르지요. 선생님 생각에 가르침은 어디에 있습니까?”


“십계명을 정확히 아는 것과 사랑과 자비에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 하느님의 이 숨길, 이 피, 이것이 내 가르침과 내 행동의 규칙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내가 지내는 하루의 모든 상황에 적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착함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것을 잘못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사명에 거짓말을 할 수 없고, 나를 ‘자비’로서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께 불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정의의 여러 세기가 지난 다음에 전적인 자비의 때가 왔습니다. 자비와 정의는 한 뱃속에서 나온 거 모양으로 자매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의가 더 강했고, 자비는 정의의 준엄성을 완화하기만 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지 않으실 수가 없으니까요. – 그러나 지금은 자비가 여왕이 되었고, 또 벌해야만 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던 정의는 이것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세히 살피시면, 자비와 정의의 사람이 하느님으로 하여금 엄하게 되지 않게 만든 순간부터 항상 같이 있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존재가 내 말에 대한 증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비는 아담에 대한 벌에까지도 섞여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그들을 잿더미로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속죄를 주셨습니다.


모든 악의 원인이었고, 그 이유로 창피를 당한 여인의 눈에 하느님께서 선의 원인인 어떤 여인의 얼굴을 빛나게 하셨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을 주셨고 생활에 필요한 지식도 주셨습니다. 살인자인 카인에게도 정의가 그를 치는 것과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를 죽이지 않도록 어떤 표를 주셨는데, 그것은 자비였습니다.


또 타락한 인류에게는 노아를 주셔서 방주 안에 인류를 보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평화의 영원한 계약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시는 무자비한 대홍수가 없을 것이라고, 다시는.


정의가 자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나와 같이 거룩한 역사를 내가 올 때까지 다시 훑어 보시겠습니까?


그러면 사랑의 물결이 점점 더 넓게 퍼지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오 인류야, 지금은 하느님의 밀물이 한껏 올라왔고, 너를 그 부드럽고 고요한 물 위에 들어올려 너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하늘까지 올려주며 네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아버지께 돌려드린다’ 하고...

 


세 사람은 이러한 사랑의 빛에 대한 놀람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그러다가 클레오파가 한숨을 짓는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혼자만 그러십니다! 요셉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벌써 호소를 했을텐데, 호소를 했을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클레오파는 예수께로 향하여 말한다.

 

“선생님, 엠마오의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전에 아내를 버렸는데, 그 여자는 안티오키아로 가서 상점을 가지고 있는 오빠와 같이 살았습니다.
문제의 이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 사람은 결혼한 지 넉 달만에 쫓겨난 그 여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여자가 쫓겨난 이유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이름이 자연 그 집안에서 없어졌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그 여자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었습니다. 이 사람이 성인(成人)이 되고 아버지에게서 그의 장사와 재산을 물려받고는 결혼할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요빠에게 큰 상점을 가진 여자를 알아서 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지, 또 어떻게 그에게 알렸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가 이 사람의 아버지의 아내였던 여자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내 생각에는 그 여자가 친자(親子)관계가 매우 불확실합니다만 중대한 죄입니다.
요셉은 유죄판결을 받아서 신자로서의 안심과 남편으로서의 안심을 동시에 잃었습니다. 괴롭기는 하지만 요셉은 소위 자기의 누이동생인 아내를 버렸습니다. 그 여자는 고통으로 인해서 열병이 들려서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용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나는 양심적으로 말해서 만일 그의 재산을 둘러싸고 원수들이 있지 않았으면 이렇게 벌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클레오파 선생, 일이 매우 중대합니다. 내게 오셨을 때 왜 그 말을 안하셨습니까?”
“선생님을 여기서 멀리 떠나시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오! 이런 일로 인해서 내가 이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들어보십시오. 물질적으로는 그것이 근친상간(近親相姦)이고,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잘못이 윤리적으로 잘못이 되기 위하여서는 그 바탕이 죄를 지으려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의식적으로 근친상간의 죄를 지었습니까?


선생의 말로는 그렇지 않다지요. 그러면 어디에 잘못이 있습니까? 즉 죄를 짓고자 한 잘못이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친아버지의 딸과 동거했다는 잘못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의 말로는 이 혈족관계가 불확실하다지요. 또 설사 그 혈족관계가 확증된다 하더라도 잘못은 동거생활의 중단과 더불어 끝납니다.

이 경우에는 그 중단이 이혼으로뿐 아니라 그 여자가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로도 확실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사람에게 그 외관상의 죄까지도 용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세상 사람이 모두 보고 아는 가운데 계속되는 왕의 근친상간에 대한 유죄판결이 없는 만큼 이 고통스러운 경우를 동정해야 할 것이라고. 이 고통스러운 경우의 기원은 더 중대하지는 않더라도 더 많은 불행을 피하기 위하여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모세가 준 허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는 이 허가를 비난합니다. 그것은 잘했건 잘못했건 결혼한 사람은 아내와 같이 살아야 하고, 아내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은 간통을 조장하고 이와 비슷한 상황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되풀이해 말합니다만,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행사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거물들에 대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세례자를 빼놓고는 아무도 왕의 죄에 대하여 항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죄선고를 하는 사람들은 그와 비슷하거나 더 나쁜 잘못이 없는 것입니까, 또한 마치 그들의 호화로운 겉옷이 죄로 인해 흔히 병든 그들의 몸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이 그들의 이름과 권력이 그 잘못을 가리는 데 소용되는 것입니까?”...

 


“선생님, 말씀 잘 하셨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 하고 회당장의 두 친구가 묻는다.
예수께서는 대답하실 수가 없다. 그것은 문이 열리며 아들 클레오파의 장인인 시몬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그래 어떻게?”
호기심이 얼마나 강한지 이제는 아무도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저 … 절대적인 유죄판결입니다. 그들은 제물 봉헌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과 분리되었습니다.”
“어디 있습니까?”
“저기 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나는 가장 유력한 사람들과 말을 해보려고 애썼지만, 그들은 나를 문둥병자처럼 내쫓았습니다. 이제는 … 그러나 … 저 사람은 멸망입니다. 재산도 영혼도. 그 사람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일어나셔서 아무 말없이 문을 향하여 가신다.


클레오파 노인은 그가 소홀히 한 것으로 인하여 예수께서 기분이 상하신 줄 알고 말한다. “아이고!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이 사건으로 고통으로 인해서 제 정신이 어지러워졌습니다. 제발 가지 마십시오!”
“클레오파 선생, 가지 않습니다. 다만 불행한 사람을 만나보러 갑니다. 가시려면 나와 같이 가십시다.” 예수께서는 현관으로 나오신다.


집 앞에는 좁은 빈터와 작은 화단들이 있고, 그 너머로 행길이 있다. 문지방 앞에 어떤 남자가 땅에 앉아 있다. 예수께서는 두 손을 내밀면서 그에게로 가까이 가신다. 예수 뒤에는 무슨 일인가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셉, 아무도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소?” 하고 예수께서는 몸을 숙여 그 사람의 두 손을 잡아 일으키려고 하신다.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불우한 사람이 묻는다.
“나는 자비와 평화요.”
“제게는 이제 자비도 평화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품에는 언제나 자비와 평화가 있소. 그 품에는 이것들이 넘쳐흐르고 특히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서 넘쳐흐르오.”
“그렇지만 제 죄는 너무 커서 저는 하느님에게서 분리되었습니다. 분명히 착하신 분인 선생님은 저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부정을 타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소. 당신을 평화로 인도하고자 하오.”
“그렇지만 저는 …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자비와 평화요. 나는 구세주요. 예수요. 일어나시오. 나는 원하는 것은 할수가 있소.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본의 아닌 오염을 사해 주오. 다른 악은 없소. 나는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오. 영원하신 분이 내게 일체의 판결권을 주셨소. 내 말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오. 가엾은 이스라엘의 아들, 오시오. 기진맥진한 당신의 정신을 감화하시오. 나는 다른 많은 죄도 용서해 주겠소. 아니 내게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실망이 가지 않을 것이오! 나는 흠 없는 어린 양이오. 그러나 나는 오염될까봐 무서워서 상처입은 다른 양들을 피하지는 않소. 오히려 그 양들을 찾아 데려가오.


엄혹한 판결로 인하여, 게다가 불공평한 판결로 인하여 완전한 파멸로 끌려들어가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소. 융통성이 없는 엄격성으로 어떤 사람을 실망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이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오. 지금 나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구속을 구세주에게서 애타게 갈망하고 있는 죄녀 한 사람을 보오. 그의 정의로 인하여 박해를 받고 있는 회당장 한 사람을 보오. 나는 부주의로 인하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을 보오. 나는 악습과 거짓말이 살고 있는 곳에서 오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보오.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담을 세워 분리를 만들어놓은 것과 같이 내가 본 일들이 나와 그들 사이에 냉혹의 담을 쌓아올리고 있는 중인데, 나는 1년 동안에 그런 일을 벌써 너무나 많이 보았소. 그들 자신이 제공하는 재료로 이 담이 완전히 쌓아진 때에는 그들에게 불행이 올 것이오!


자, 마시고 자시오. 당신은 기진맥진했소. 그리고 내일은 나와 같이 갑시다. 두려워 마시오. 당신의 정신이 다시 안전하고 평온하게 되면, 당신의 장래를 마음대로 택하시오. 지금은 당신이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고, 당신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할거요.”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큰 방으로 데리고 가셔서 억지로 당신 자리에 앉히시고 나서 그의 시중을 드신다. 그런 다음 헤르마와 시몬에게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내 가르침입니다. 이것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는 말로만 권장하지 않고, 실천합니다. 진리와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은 나에게 오시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복음 전파의 첫해가 끝난다. 이것을 기록하여라. 또 무슨 말을 네게 해야 할까?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준 것은 이것이 알려지기를 내가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도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사이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 아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니까 – 내 갈망이 너무나 많은 일로 인해 물리쳐진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들에게 붙잡혀 있는 영원한 주재자인 내게 있어서 큰 고통이다 ….”

 

 

107. 회당장 클레오파의 집에서 – 평화의 오아시스 (medjugorj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