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시

101. 드고아에서 암환자 예루사의 병을 고치시다.

Skyblue fiat 2022. 3. 30. 15:33

 

신부님께 말씀드린 것과 같이 어제 저녁에 저는 별로 기분좋지 않은 방문과 예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셨고, 들어오시면서 제게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제 얼굴이 어떠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신부님도 아시다시피, 사탄이 저를 이런 것 저런 것으로 유혹하면서 귀찮게 하는 것이 이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은 육체를 유혹하지 않고 정신을 유혹합니다. 1년 전부터 사탄이 저를 이따금씩 귀찮게 굽니다. 첫번째 유혹을 한 것은 제게 있어서는 무서운 시절이었던 1944년 4월에 그에게 경배하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때였습니다. 두 번째는 제게 모욕을 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기 위하여 스승의 말투를 흉내내라고 유혹한 1944년 7월 4일의 깊이 파고드는 맹렬하고 오랜 유혹으로 저를 괴롭힌 때였습니다. 세 번째는 제가 받아쓴 말을 제 개인의 작품이라고 해서 발표하여 그 공을 제게 돌리고 거기에서 이득을 취하라는 암시를 주었을 때입니다. 네 번째는 금년 2월에(벌써 2월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나타나서(그를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때는 그저 그의 존재를 느끼기만 했었으니까요.) 그의 모습과 증오로 공포를 준 때였습니다. 다섯 번째는 어제 저녁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사탄의 중요한 표시들입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는 더 작은 모든 다른 것들도 사탄에게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저를 교만이나 자기만족이나 거짓꾸밈으로 이끌어가고자 하거나, 또는 제가 병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정신장애의 결과라고 믿게 하려는 다른 사람들 말입니다. 친척과 당국과 트럭운전사들에게서 오는 훼방들까지도 저는 모두 사탄의 짓으로 생각합니다. 사탄은 저를 귀찮게 굴고 저를 불안과 반항으로 이끌어 가고 기도가 소용없고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믿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려서 어제는 그가 저를 몹시 불안케 했습니다. 제가 속았고 거기에 대해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포가 제 마음 속에 생기게 한 것이 이것이 첫번째가 아닙니다. 여기에 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신부님도 아시지요. … 예수님과 신부님은 항상 제 용기를 북돋아 주시지만 그 공포는 항상 되살아납니다. 그렇지만 그 생각들은 사탄이 불러일으키기는 해도 제게서 오는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분명하고 직접적인 위협이었습니다. 사탄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라, 해. 마침 형편이 좋을 때에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최후 순간에 말이다. 그때에 나는 네가 항상 하느님과 사람들과 너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네가 거짓말장이라는 것을 하도 설득해서 네가 진짜 공포에 빠지고 지옥에 갈 것이라는 실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덜 무거운 죄를 지고 하느님에게로 가려고 최종적으로 취소하는 줄로 네 주위 사람들이 믿을 만한 그런 말로 이 사실을 말할 것이다. 너도 너와 같이 있는 사람들도 이런 확신을 가지고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이렇게 죽을 것이고 … 다른 사람들은 그로 인해서 심각한 불안에 빠져 있을 것이다. … 나는 너를 기다리겠다. 틀림없이 … 그리고 너도 나를 기다려라. 나는 지키지 않는 약속을 하지를 않는다. 지금은 네가 나를 지나치게 초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때에는 내가 너를 초조하게 만들겠다. 나는 네가 내게 한 것을 모두 복수하겠다. … 나만이 할 줄 아는 방식으로 원수를 갚겠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는 저를 몹시 기분 나쁘게 해놓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다음 다정스러운 성모님이 오셨습니다. 흰옷을 입으신 다정스럽고 애정이 넘치는 성모님이 오셔서 제게 미소를 보내시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제 예수님도 더할 수 없이 명랑한 미소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떠나시자마자 다시 의기소침에 빠졌습니다. …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이 생각이 이렇게 강하게 제게 올 때에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느낍니다.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다시는 한 마디도 쓰지 않겠다.” 하고. 그러나 다음에는 곰곰히 생각하고 혼자 이런 말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사탄이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암시를 물리쳐버립니다.

 

지금은 수난시기이지요? 착한 사람의 마음에까지도 아주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맹목적인 숭배의 결과로 대변자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변자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고 숭배해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또 저를 업신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나 저 사람들이나 모두, 비록 목적은 다르다 하더라도, 특히 이 수난시기에 제게 희한한 일이 일어나기를 똑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신부님께서도 제 경우에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처럼 그런 것을 기다리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부님의 경우에는 그것이 정당화되는 기대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경멸이거나 맹목적 숭배입니다. 확실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 인격에 대한 맹목적 숭배보다는 마리아 발또르따에 대한 경멸을 더 낫게 생각합니다. 맹목적인 숭배는 저를 말할 수 없이 난처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제 물건을 강탈하는 것 같고, 뭐라고 할까요? … 제 귀중한 비밀을 억지로 빼앗아 가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것이 괴롭습니다. 그뿐이예요. 경멸은 마리아 발또르따에 대한 것이라면 덜 괴롭습니다. “받아 쓴 것”을 해치지 않고, 그것을 하찮은 말이나 무분별한 말로 받아들여지게 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


그러나 그 많은 사람의 다소간 거룩하고 올바른 소원보다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 그보다도 그분의 가엾은 마리아의 말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인자가 있습니다. 마리아가 항상 하는 기도, 마리아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이렇습니다. “여기 당신의 ‘희생제물’이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표는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제게 관한 한, 하느님께서 저를 통하여 이렇게 당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원치도 않았을 것입니다. …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제가 당신의 축음기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 그러니 참아야지요! 그러나 다른 것은 싫고, 싫고, 또 싫습니다. 진단할 수 있거나, 또는 지금까지 알려진 증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진단을 내릴 수 없는 모든 병을 앓아도 좋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것을 모두 제 몸에 당하라고 모든 고통을 주셔도 좋습니다. 예수님의 임종의 고통의 무게로 제 몸을 휘게 하는 완전한 임종의 고통을 당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과 저를 지도하시는 신부님과 제게만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 수난시기에 제가 물질적으로 수난의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저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이 실망한다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수난의 고통을 겪습니다. 더 심해진 육체적 고통을 겪습니다. 매와 골고타에 올라가는 기진맥진으로 으스러지고 작아진 제 육체, 고문을 하는 고리에 끼워진 제 머리, 근육의 땡김과 경련, 제 숨을 끊고 얼굴을 충혈시키는 그 고통, 그리고 목마름과 열과 무기력과 형별로 인한 경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 수난”이 아니고, 제게는 여전히 “제 게쎄마니”입니다. 환상과 공포를 동반하고 다가오는 밤 … 미래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 그리고 영원한 사랑은 곁에 안계신데 증오가 곁에 있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목바르게 하고, 열이 나게 하고,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저를 기진맥진하게 하고, 저를 무찌르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작년에 하느님께서 저를 혼자 내버려두셨을 때 지낸 시간만큼이나 강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하다고까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제 안에 계신데도 불구하고 제가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잘 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떤 고통들은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실제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아버지에게나 맹목적인 숭배자들에게나 호기심 많은 사람들, 즉 그 현상에 … 흥미를 느끼거나 그것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는 한층 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우리가 겪는 것을 한 시간 동안 겪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 그리고 아마 우리를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맹목적 숭배자들도. 아니 그건 안됩니다! 그들은 겪어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맹목적인 숭배자들은 그런 한 시간에 대한 공포로 어디론가 빠져나가려고 할 것입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 연구하는 사람들, 남을 업신여기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하느님을 저주하게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 어깨를 내밀어 멍에를 메고, 쓴 잔을 마십시다. … 그리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님, 제 뜻 말고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여기 당신의 여종과 희생제물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를 가지고 당신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당신 인자로 인하여 제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만 하십시오. 그리고 저를 혼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묶어 가십시오.”

 

 


나는 이런 것을 본다. 늦은 겨울 아침의 첫 햇살을 받으시며 예수께서 드고아라는 작은 읍내로 들어가신다. 이른 시간의 행인에게 물으신다.

죽어가는 며느리를 둔 마리안나 할머니가 어디 사십니까?”
“레위의 미망인 마리안나 말입니까? 죠시아의 아내 예루사의 시어머니요?”
“예. 그 할머니 말입니다.”
“이거 보세요. 이 거리 끝에 광장이 하나 있고, 모퉁이에는 샘이 있는데, 거기서 길이 세 갈래가 됩니다. 가운데 종려나무가 있는 길로 들어서서 100보가량 더 가시오. 그러면 도랑이 있을텐데, 그 도랑을 따라 나무다리 있는 데까지 가시오. 그 나무다리를 건너가면 지붕이 덮인 길이 나올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시오. 길이 광장으로 통하기 때문에 길도 없어지고 지붕도 없어지면 다 간 것입니다. 마리안나의 집은 낡아서 금빛깔이 납니다. 그들은 많은 지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을 수리할 수가 없습니다. 틀리지 않게 찾아가시오. … 안녕히 가세요. 멀리서 오셨소?”
“별로.”
“하지만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이 사람들은요? 명절 때문에 오시는거요?”
“이 사람들은 내 친구들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평화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예수께서는 이제는 바쁘지 않은 수다장이를 남겨두시고 길을 가시고, 사도들이 따라간다.


일행은 작은 광장에 이른다. 진흙투성이의 조그만한 땅조각 한 가운데에는 한 그루만이 돋아난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데, 여름에는 기분좋은 그늘을 만들어 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숱하고 우중충한 잎들로 초라한 집을을 덮어 햇빛과 햇볕을 빼앗아 가서 을씨년스럽다.
마리안나의 집은 가장 비참하다. 넓고 낮으나, 도무지 손질을 하지 않았다. 문에는 낡은 나무에 생긴 긁힌 자리에 나무 조각을 더덕더덕 댔고, 커튼이 없는 작은 창문은 눈알이 없는 눈구멍 같은 검은 구멍을 드러내 보인다.


예수께서 문을 두드리신다. 눈이 새빨개진 창백하고 야윈 열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나온다.

“네가 마리안나 할머니의 손녀냐? 할머니한테 가서 예수님이 왔다고 말씀드려라.”
어린이는 외마디소리를 지르고는 큰 소리로 부르면서 달아나다. 노파가 달려오고, 지금 나왔던 계집아이를 빼고는 아이 여섯 명이 따라온다. 제일 큰 아이는 그 계집아이와 쌍둥이인 것 같다. 제일 나중에 오는, 신발을 신지 않고 야윈 두 사내아이는 할머니의 옷자락에 매달려 오는데 겨우 걸을 줄 알 정도이다.


“아이고! 오셨군요! 얘들아, 메시아께 절해라! 선생님이 제 초라한 집에 알맞에 오셨습니다. 제 며느리가 죽어갑니다. … 얘들아, 엄마가 너희들 우는 소리를 듣지 않게 울지 말아라. 가엾은 것들! 계집아이들은 밤을 새워서 기진맥진했습니다. 제가 모든 일을 해야 되는데, 저는 이제는 밤을 새울 수가 없고 졸려서 땅에 넘어집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보지 못한 것이 여러 달째됩니다. 지금은 며느리 곁에서 의자에 앉아 잡니다. 그리고 어린 것들도 그렇군요. 그렇지만 계집아이들은 어려서 그것을 괴로워합니다. 사내아이들은 땔나무를 하러 갑니다. 그애들은 빵을 사려고 땔나무를 팔기도 합니다. 이 가엾은 것들이 이제는 기진맥진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를 말려 죽이는 것은 피로가 아니라, 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 울지들 말아라. 예수님이 오셨는데.”


“그래, 울지들 말아라. 엄마 병이 낫고, 아빠가 돌아올거다. 너희들은 이제 그렇게 비용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몹시 배고프지도 않을 것이다. 이 애들이 막내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주님. 저 약한 어미가 세 번이나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 그래서 젖가슴이 병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고.” 하며 베드로가 수염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런 다음 어린아이 하나를 안고, 울음을 그치게 하느라고 사과 한 알을 준다. 다른 어린 것도 달라고 하니, 베드로는 그도 만족 시킨다. 예수께서는 노파를 따라 안마당을 지나신 다음 또 다른 마당을 지나 층계로 해서 여자가 신음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신다. 여자는 아직 젊지만 몹시 야위었다.


“예루사야, 메시아가 오셨다. 이제 너는 아프지 않게 된다. 봐라. 메시아가 정말 오셨다. 이사악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사악이 그렇게 말했었지. 그러니 믿어라. 이제 메시아가 오셨으니, 네 병을 고치실 수도 있다.”


“예, 어머님, 예, 주님. 그렇지만 만일 제 병을 고쳐 주실 수 없으면 적어도 죽게나 해 주십시오. 제 가슴 속에는 개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달콤한 젖을 주었는데, 그애들의 입이 제게 불과 쓴 맛을 갖다 주었습니다. 주님, 저는 너무나 아픕니다! 저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구요! 제 남편은 생활비를 벌려고 멀리 가서 일합니다. 늙으신 어머님은 기진맥진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죽어가구요. … 제가 이 병으로 죽고, 어머님이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노력으로 인해서 돌아가시면 제 아이들이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


“새들에게는 하느님이 계시고, 사람의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요. 그러나 아기엄마는 죽지 않아요. 여기가 몹시 아픕니까?” 예수께서 붕대로 싸맨 젖가슴에 손을 얹으려고 하신다.
“제게 손을 대지 마세요. 더 아프게 하지 마세요!” 하고 병자가 부르짖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긴 손을 병든 유방에 가만히 얹으신다.

“가엾은 예루사, 이 안에 정말 불이 있군요. 어머니의 사랑이 아기 엄마의 젖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남편과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지요?”


“아이고! 왜 미워해야겠습니까? 남편은 착하고 저를 항상 사랑했는데요. 저희들은 절제있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사랑이 자녀들로 꽃피었습니다. … 그리고 이 애들은! … 얘들이 떠나는 것이 몹시 불안합니다. 아니 그런데 … 주님! 아니 불이 사라집니다! 어머님! 어머님! 마치 하늘의 천사가 제 아픈 곳을 불어주는 것 같습니다! 오!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주님, 손을 떼지 마십시오. 손을 떼지 마세요. 오히려 눌러 주세요. 아이고! 얼마나 큰 힘입니까! 아이고 좋아라! 내 아이들! 이리 오너라, 아이들아! 보고 싶다! 디나야! 오시아야! 세바야! 멜키야! 다윗아! 유다야! 이리 오너라! 이리 와! 엄마가 이젠 죽지 않는다! 오! …”

젊은 여자가 베개에서 머리를 돌리며 기뻐서 우는데, 아이들이 달려온다. 그리고 노파는 무릎을 꿇고, 기쁜 나머지 달리 어떻게 할지를 몰라 불가마 속에서 부른 아자리아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파는 늙은 여자의 떨리는 목소리로 그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른다.


“아! 주님! 그런데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주님을 대접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고 마침내 말한다.


예수께서는 할머니를 일으키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피곤하니까 쉬게만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세상은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떠나가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충실하시고 침묵을 지키시기를 부탁합니다. 할머니와 아기엄마와 아이들에게 모두.”


“아이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집에는 아무도 안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염려없이 여기 머무르실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뭐! 그렇지만 … 잡수시는 건 어떡합니까? 저는 빵 조금밖에 없는데요 ….”


예수께서는 가리옷 사람을 부르신다. “돈을 가지고 가서 필요한 것을 모두 사 오너라. 이 선량한 사람들 집에서 식사를 하고 쉬어 가기로 한다. 저녁 때까지 다녀오너라.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런 다음 병을 고쳐 주신 여자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붕대를 풀고 일어나 어머님을 도와드리시오. 그리고 기뻐하시오. 하느님께서 당신 부덕(婦德)을 상 주시려고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우리 함께 식사를 합시다. 오늘은 지극히 높으신 주님께서 당신 집에 계시므로 주님을 환대해서 축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방에서 나오셔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유다에게로 가신다.

물건을 푸짐하게 사 오너라. 그래서 이들이 이후 며칠 동안 먹을 것이 있게 하여라. 우리는 라자로의 집에 가면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이 허락하시면 … 제 돈이 있는데, 선생님을 원수들에게서 구하기 위해 바치기로 서원을 했습니다. 그것을 빵으로 바꾸겠습니다. 성전에 있는 자들의 입에 넣는 것보다는 하느님 안에서의 이 형제들을 위해 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선생님 허락하시지요? 황금이 제게는 항상 악마였습니다. 저는 그 매혹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착해진 지금 지극히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유롭게 된 것을 느끼고 행복합니다.”


“유다야,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그리고 주께서 네게 평화를 주시기를 바란다.”

 

-유다가 나가는 동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로 가시고,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저는 지금 큰 폭풍우에 휘말려 있습니다. 반짝이는 햇빛과 시꺼먼 소나기 구름이 갈마드는 3월의 이 폭풍우 중의 하나와 꼭같은 폭풍우입니다. 저는 높은 파도 위에 서서 때로는 꼭대기에, 햇빛이 쨍쨍한 파도의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가 때로는 저를 어두운 심연 속으로 잠가 버리려고 하는 것 같은 산더미 같은 두 물결 사이의 구렁으로 빠져들어가는 작은 배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번갈아가며 성난 대양에서 지극히 고요한 항구로 들어가는 것 같고, 때로는 쓸개 속으로, 때로는 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고통이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제게 주시는 짧고 다정스러운 말씀을 듣고 복된 미소를 받고, 그분들이 주시는 힘을 받으며 하늘나라에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오! 나는 착각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죄녀도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하고. (물론 받아 쓰는 말과 환상에 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캄캄한 심연 속으로, 어제 저녁에 들은 말과 위협의 무서운 소란 속으로 다시 빠져 들어갑니다. 천당을 맛본 다음에 지옥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인자하신 예수님과 성모님이 저를 구조하러 다시 오시고, 제 가엾은 영혼은 태양과 하늘을 향하여 들어올려져 저를 그지없이 즐겁게 하는 지복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또 다시 고민과 밤과 심한 불안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저는 무섭습니다. … 이 싸움을 이기게 도와주십시오.

 

 

출처

101. 드고아에서 암환자 예루사의 병을 고치시다. – 평화의 오아시스 (medjugorje.kr)